장제원 사건 이후, 우리는 침묵을 넘어설 수 있는가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2015년 11월, 당시 부산의 한 대학 부총장이었던 장제원 전 의원은 자신이 고용한 비서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 AA 씨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피해를 보았다며 진술했고, 사건 직후 호텔 안에서 직접 영상과 사진을 촬영, 해바라기센터에서 증거물 채취 및 상담을 받았다. 2025년 1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A 씨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다.
3월 5일, 장 전 의원은 “10년 전 일을 꺼내는 데 무언가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한다. 이어진 3월 6일, 국민의힘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시절엔 왜 조용했느냐”는 발언으로 피해자를 겨냥해 2차 가해 논란을 자초한다.
3월 28일, 장 전 의원은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고, 3월 31일 밤, 그는 서울 강동구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4월 1일,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권력의 이름으로 눌러진 말들
우리는 다시 시대의 사건을 맞이했다. 어느 한 사람에게만, 혹은 과거의 아픔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조직 내부에서 위계는 때로 법보다 위에 존재한다. 피해자 A 씨가 오랜 시간 고소를 망설인 이유는 그 위계의 무게 때문이었다.
비서는 쉽게 교체되는 존재였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지역 유지이자 3선 국회의원, 그리고 한 대학의 실질적 권력이었다. ‘말할 수 없는 구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 그 뒤에 감춰진 폭력
A 씨는 “미투 당시에도 말하고 싶었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이제 와서?”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이는 명백한 2차 가해다. 피해자는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여전히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을, 말의 시기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먼저 묻는다. 피해자의 고통은, 그렇게 지워진다.
진실을 남기지 못한 죽음, 사라진 책임
장 전 의원은 생전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고, '정치적 음모'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러나 경찰 조사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법의 심판도, 공적 사과도 없는 채 사건은 ‘공소권 없음’이라는 말로 끝나버렸다.
법은 멈췄지만, 진실은 아직 살아 있다. 그는 떠났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그날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구조가 만든 침묵, 사회는 공범이었는가
A 씨는 반복되는 트라우마 속에서 직장을 떠났고, 주변 인물들은 “참아라.”, “잊힐 것이다”라며 말을 막았다. 무책임한 위로와 회유, 그것이 바로 침묵을 생산하는 사회의 방식이다.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공고한 권력과 방관, 침묵이 빚은 구조적 범죄다.
성은 여전히 권력자의 욕망이 투사되는 공간이었고, 우리는 그 권력을 지키는 데 익숙했다.
권력과 감정의 위험한 경계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과 권력을 무기로 삼은 도덕의 실패다. 문화예술계와 마찬가지로 정치 영역도 감성의 언어를 빌려 위계를 정당화하는 일이 잦다. ‘일’과 ‘관계’, ‘존경’과 ‘복종’의 경계가 흐려질 때, 침묵은 시작된다. 그 침묵은 무관심으로, 무관심은 다시 피해자를 만든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장치여야 한다. 하지만 강자에겐 회피 가능한 절차가 되고, 약자에겐 넘기 힘든 벽이 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정의를 잃은 것이다. 장제원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법은 아직도 '거미줄'인가?
지금 이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왜 지금?”, “정치적 목적은?”이라는 질문부터 던지는가? 피해자는 자기의 삶 전체를 걸고 말하고 있다. 그 말 앞에서, 우리는 침묵으로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연대로 말할 것인가?
이 사건은 사법의 끝이 아니라 도덕의 질문이다
장제원은 진실을 외면했고, 피해자는 오랜 고통 끝에 말했으며, 사회는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이 사건은 형사적 종결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했던 권력의 비틀림, 구조의 굴절, 침묵의 공범성을 반추해야 한다.
‘미투’, 그 이름은 현재형이다. 장제원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침묵을 벗어던질 준비가 되었는가?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이 사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의 이름이다.
'iss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인 1025명 영상 성명서. 엔딩크레딧, 윤석열 파면 촉구(영상 포함) (2) | 2025.04.01 |
---|---|
4월 4일, 탄핵심판 선고 확정. 두 얼굴과 다가오는 정치적 진폭 (0) | 2025.04.01 |
윤석열 탄핵 지연과 권한대행 논란 (4) | 2025.03.31 |
경북·경남 대형 산불. 3월 31일 이후 (1) | 2025.03.31 |
경북 산불 완전히 진화, 사라지지 않은 상흔 (2) | 2025.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