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재난, 문화재까지 삼키고 남은 게 없어
- 바람을 먹고 달아오른 불, 경계를 무너뜨린 재난의 서사
- 경북에서 울산까지… 확산하는 불길과 붕괴한 진화 체계
- 소실된 전통과 기억: 문화재·사찰 피해 잇따라
- 헬기와 빗방울,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고
- 산불은 시스템의 붕괴를 비추는 재난
3월 말, 경북의 산천은 봄볕 대신 불길을 맞았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씨는 청송과 안동, 영양을 거쳐 동해안 영덕까지 치달았다. 서울 절반 이상에 달하는 3만 3천 헥타르를 집어삼킨 산불은, 이미 재앙이 되었다. 태풍급 강풍이 일 최대 순간풍속 초속 25m를 넘나들었고, 기온은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았다. 건조한 공기, 낮은 강수량, 예측 불가능한 국지풍이 맞물리며 재난은 구조를 압도하는 속도로 번졌다. 강풍 특보는 과거보다 두세 배 늘었고, 기후변화는 이 지역에 일 최고기온 5배 확률 증가라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이번 산불은 한 계절의 변덕이 아니라, 시대의 기후 리스크가 응축된 결과다.
영덕 석리, '따개비마을'로 불리던 해안절벽 마을은 화염 속에 사라졌다. 단단했던 돌담과 처마는 주저앉았고, 탄화된 플라스틱과 바람결에 오그라든 생필품이 마당에 뒹굴었다. 마을 어귀, 노인의 육성은 그 자체로 재난의 증언이었다. "불티가 바닥에서 튀어 다녔어요. 돌아와서 문 열어보니 그을음뿐이더라고요." 마을 두 사람은 끝내 집 안에서 숨졌고, 남은 이는 소방호스로 타버린 집터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진 피난 행렬은 길 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차량은 서서히 밀려 들판에 멈췄고, 일부 주민은 배를 타고 해상 탈출을 감행했다. 휴대전화는 먹통이 되었고, 통신두절과 정전이 공포를 더했다. 한 주민은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 생각이 났다"라며 절박한 밤을 떠올렸다. 해경과 어선이 투입되어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지만, 그들이 느꼈던 공포는 모든 언어를 집어삼켰다.
청송군의 피난소조차 불안했다. 국민체육센터는 불길이 근처까지 다가오며 급히 주민들을 문화예술회관으로 이송해야 했다. 대피소를 세 번이나 옮긴 주민도 있었다. 전기와 통신마저 끊긴 밤, 바람은 더욱 세찼다. 불길은 방향을 바꾸며 마을을 포위했다. 주민들은 짐을 챙길 틈 없이 맨몸으로 달아났고, 한 노인은 "잠을 거의 못 자고 빈손으로 뛰쳐나왔다."라고 했다.
경북과 경남에 이어 울산까지, 남동부 전역이 불길에 사로잡혔다. 울주군 온양읍 산불은 단 하룻밤 사이 400㏊ 가까이 영역을 확장했고, 진화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지리산국립공원 일부까지 번진 산청·하동의 산불은 화선이 60㎞를 넘었다. 산속의 불씨는 눈에 보이지 않고, 진화대는 오르기조차 힘든 산지를 헤매야 했다. 산불은 인간의 지형과 기술을 비웃듯 무작정 앞서갔다.
이번 산불로 인한 문화재와 사찰 피해 또한 심각하다. 경북 청송의 보물 제514호 '청송 송소고택'은 인근 산불 확산으로 일시적으로 긴급 방호했으며, 영양과 안동 일대에서도 문화재 지구 인접지에 여러 차례 방어선 구축이 이루어졌다. 영덕에서는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전통 사찰의 전각 일부가 불에 타는 피해를 보았고, 목조건물 특성상 잿더미가 된 곳도 있었다. 문화재청과 지역 당국은 소실과 손상 여부를 정밀 조사 중이며, 일부 사찰에서는 유물 대피를 위한 '문화재 피난 매뉴얼'이 처음으로 작동됐다. 소방과 문화재 관리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던 이 현장은, 단순한 재산 이상의 손실을 목도한 문화의 재난 현장이었다.
산림청은 일출과 동시에 헬기 50여 대를 띄우며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강풍과 건조한 공기, 낮은 강수량은 변수였다. 이날 내린 5mm 안팎의 비는 기대보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땅은 여전히 메말랐고, 바람은 흩뿌린 빗방울조차 날려버렸다. 비구름의 그림자는 닿았지만, 재앙의 불씨를 끄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연이 허락한 구원의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대피한 주민은 이미 2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일부만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간 자리는 폐허였다. 비닐하우스와 가재도구, 주택과 작업장 모두 불길에 사라졌다. 농민은 밭을 잃었고, 노인은 기억을 태웠다. 휴대전화가 꺼진 사이, 삶의 흔적도 함께 꺼졌다. 한 주민은 “불이 먼지처럼 날아왔다”라고 했다. 이 산불은 단지 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해체하는 일이었다.
산불은 단지 '자연의 화재'가 아니었다. 기후 위기와 재난 대응 시스템, 고령화된 지역사회 구조의 복합적인 약점을 드러낸 거울이었다. 대피 안내의 부재, 통신 기반의 붕괴, 접근이 어려운 지형에 대한 대응력 부족—all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무너졌다. ‘관리 가능했던 위기’가 ‘재앙’이 된 이유는, 불씨보다 느렸던 준비의 속도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복구와 책임이다. 사라진 집을 되돌릴 순 없지만, 삶의 터전을 지키지 못한 구조적 허점을 드러내는 데 멈추지 말아야 한다. 산불은 일주일 넘게 타오르고 있지만, 더 오래 지속될 것은 이 재난이 남긴 질문들이다. 우리는 이제 “왜 이렇게 되었는가?”보다 “어떻게 다시 설 것인가”를 말해야 한다. 타버린 마을에서 가장 먼저 피어야 할 것은 연기가 아니라,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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