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침묵, 절벽 위에 선 민주주의
침묵의 법정, 절벽 위에 선 민주주의
탄핵 선고는 언제나?
바람이 불었다.
법을 입었다는 사람들이 한낱 바람처럼 스쳐 갔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골랐다. 헌법이 그들의 입을 빌려 무언가를 말하길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온 건 공허한 침묵뿐이었다. 헌법재판소, 그곳은 더 이상 정의의 온기가 아니라 권력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오래도록 한 장면을 떠올린다.
악수하는 손끝, 주머니 속 권한을 감추고 미소로 봉합한 얼굴들.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은 ‘국민의 뜻’이 아니라 ‘정치의 칼’이었다.
법을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와 도구로 쥐는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를 잃는다.
기억해야 한다.
조봉암을 향한 사법의 칼날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이었고, 인혁당 사건은 명찰 없는 독재의 참혹한 초상이었다.
그 모든 비극의 중심엔 판결이 있었다. 결코 법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을 입은 사람들의 얼굴이.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이라는 이름 아래, 법은 다시 한번 정치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탄핵소추안은 국회를 지나갔지만, 그다음 문턱에서 발이 묶였다.
헌재는 고개를 돌리고, 재판관 임명은 무시당하며, 국회가 내린 결정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이름 아래 ‘기각’된다.
이 나라는 지금, 법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감각이다.
그 감각은 타인의 고통에 떨리는 촉수이며, 불의 앞에서 불편해지는 의식이다.
헌법을 지키는 것이 법률 조문이 아니라 사람의 윤리라는 말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실감이 난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왜 우리는, 다시 이 어두운 강을 건너야만 하는가.
왜 헌재는 침묵하며, 왜 정치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법을 불러내는가.
왜 법조인은 시민의 두려움을 가볍게 지나치는가.
답은 오래전 거리에서 들려왔다.
4월의 꽃잎 위에 서성이는 외침, 여름의 횃불 아래 울려 퍼지던 노래.
시민은 결코 법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법의 자격을 잃은 자들을 기억했을 뿐이다.
우리는 기억으로 저항했고, 그 저항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되살렸다.
이제, 다음 장을 열 때다.
정치가 법을 휘두른다면, 시민은 투표로 응답해야 한다.
‘탄핵 찬성’이라는 구호는 분노의 총화가 아니라, 헌법의 손을 다시 잡겠다는 약속이다.
‘국민투표’는 선출된 침묵에 맞서는 마지막 언어다.
우리는 헌법의 주석이 아니라, 그 본문이다.
지금, 침묵 위에 말을 얹고, 절벽 위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 다리를 건너는 첫걸음은 언제나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