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진화율 현황 (2025년 3월 28일 낮 12시 기준)
경북 산불 진화율 현황 (2025년 3월 28일 낮 12시 기준)
- 숯보다 더 검게 타버린 기억
- 불타는 시간들, 잿더미 위의 문화
- 예고된 재난, 외면된 준비
- 복원의 시대를 넘어, 실천의 시대로
의성 98% | 청송 91% | 안동 90% | 영양 95% | 영덕 93%
평균 진화율: 94%
잔여 화선 총 길이: 57㎞
산불 피해 면적: 총 48,150ha
사망 28명, 중상 9명, 경상 28명, 이재민 8,078명
2025년 3월, 경북은 불의 계절을 맞았다.
산이 불탔고, 마을이 사라졌으며, 이름 있는 전각과 보살상이 연기에 휩싸여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의성과 청송, 안동과 영양, 영덕까지, 산불은 강풍을 타고 나라의 북동부를 휘젓듯 훑었다. 숫자로는 진화율 94%, 의성 98%, 영양 95%라 했지만, 불길이 남긴 상처는 이미 회복의 단계를 벗어났다.
이제 산은 거의 잠잠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가슴은 여전히 타들어 가고 있다. 숲은 재로 가라앉았고, 마을은 무너진 지붕만 남은 채 멈춰 있다. 영덕읍 석리 마을은 마치 전쟁 직후의 폐허처럼 고요한 잿빛을 뿌리고 있다.
불은 나무만 태우지 않는다. 그것은 풍경의 기억과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앗아간다. 그곳에 살았던 이들의 하루는, 이제 고요한 절망과 함께 다시 짜여야 한다. 산림 피해는 48,150헥타르로, 2000년 동해안 산불의 두 배를 넘었다. 숫자로 환산하면 축구장 6만 7천 개, 여의도의 166배, 서울 면적의 80%가 불길 아래에 놓였다.
그러나 면적보다 무서운 것은, 그 안에 깃들었던 시간의 무게다. 모든 재난은 통계로 환원될 수 없고, 모든 화재는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 이번 재난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고운사는 더 이상 그 이름처럼 아름답지 않다. 21개의 전각이 사라졌고,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마저 무너졌다. 범종은 녹아내렸고, 부처의 자비는 검은 연기 속에 흩어졌다. 청송의 운람사, 송소 고택, 사남고택, 그리고 하회마을 인근 문화재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역사와 예술, 종교가 공존하던 공간들이 아무런 대피도 없이 불길에 내던져졌다. 한 어르신은 숭례문이 불탔던 그날을 떠올렸다 했다. 문화재가 불타는 것을 보는 고통은, 어떤 면에서는 가족을 잃는 고통과도 같다. 그것은 집단적 애도의 시작이며, 상실의 정체성을 마주하는 일이다.
“이렇게 또 무방비로 조상의 숨결을 날려 보내야 하나”는 절규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건 방치된 기억에 대한 항의이고, 반복된 무관심에 대한 저항이다. 17년 전, 우리는 숭례문 앞에서 “보존만으로는 부족하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교훈은 서랍 속 문서에 불과했다. 문화재청은 ‘복원’을, 지자체는 ‘지원금’을 말했지만, 정작 아무도 '방재'를 말하지 않았다. 보존이란 시간을 견디는 구조다.
그러나 이제 보존은, 재난을 견딜 수 있는 구조여야만 한다.
산불은 예고된 재난이었다. 이상기후로 인한 건조한 날씨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전문가들의 경고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사찰과 서원, 고택에는 방화선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물 한 통, 포 하나로 1300년의 세월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예기치 못한 사고'라 둘러댈 수 있을까? 문화재는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상의 흔적이며, 세대를 잇는 말 없는 문장이다. 하회마을의 마루 밑 햇살, 병산서원의 서책 냄새, 고운사의 종소리는 소리 없이 이어져 온 전통의 숨결이다.
그 숨결이 끊어졌다는 건, 지금의 우리는 이제 그 기억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문화재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였고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다행히 오늘, 비가 내렸다. 소량의 비였지만, 연무를 걷어냈고 공기의 습도를 올려 진화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산림청은 총 88대의 헬기, 5,500명의 진화 인력, 695대의 차량을 투입했다. 의성은 98%, 영양은 95%, 영덕은 93%로 급진전을 이루었고, 안동과 청송도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화선 57km는 여전히 재확산의 불씨를 품고 있다. 경북도는 일몰 전까지 주불 진화를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늘 집에 가도 된다”라고 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아직 재에 묻힌 집터 앞에 앉아 있다.
행정의 언어와 현실의 감정은 여전히 교차하지 못한다. 주불 진화가 완료된다고 해서,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복원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의 오만일 수 있다. 숲은 언젠가 다시 자랄지라도, 하회마을의 세월은 다시 피어나지 않는다.
복원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방’이라는 현실적 시선이다. ‘방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조건이다. 우리는 잃었다. 그러나 아직 지킬 수 있다. 지금의 재난은 우리가 다음을 준비할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은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구조이자 정신의 근간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문화의 울림이 꺼지지 않도록, 이제 우리는 실천으로 응답해야 한다.